석가모니의 깨달음에 대하여

석가모니의 길은 생노병사로부터 시작된다. 사람의 일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때문에 그는 이 세상에서 사는것은 고통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태여남은 고통의 시작이다.
산다는것은 고통의 연속이다.
그래서 고통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를 생각하였다.
그는 많은 도리를 찾았고,
결국은 자아의 척도를 가지고 있기에 고통을 겪게 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모든것은 무상하고, 색즉공시라 말 하였다.

그러나,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고 알려줬을때,
거기에는 생각하는 자아가 있고, 생각이 있는한 자아는 없앨수 없는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명상을 하여도, 그 결과는 실패로 끝난다.
그것은 현실과 떨어진 비현실적인 체험에 기초한 경지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런것은 아무리 많은 체험을 하여도,
그 사고구조의 틀에 있는 한 고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석가모니는 태여나지 않는것이 좋다고 하였다.
태어나지 않으면 고해를 체험하지 않으며,
그 결과 고해로부터 해방된다.
여기에서 알수 있는것은 석가모니는 꽤 소극적이 였다는 것이다^^

사람이 태여나면 고해의 빠지기에,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하여서는,
태여나지 않는게 좋은 일이 된다.
태여난다는것은, 육체를 얻고,
자아의 인과보응이 발생하며,거기에 걸맞는 자신의 인생이 주어지게 된다.
그리고 이 인생을 계기로 다음생에 태어난다.
무한한 생과시의 윤회을 반복하기에, 이런 분별없는 윤회가 지겨워
태여나지 않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가? 또는 왜 태여나는지를 생각하였다.
그래서 도달한 결론은 <집착하는 마음이 자아를 성립하고, 자아게 갇히게 한다. 이것에 의하여 태어나게 되는것이다> 라고 말한다.

그것이 인간의 성性인 것이다.

여기에서 재미있는것은 13000년전 고대인간들의 지혜에 의하면
사람의 경지에 이른 존재는:
이 세계의 시작부터 끝까지 깨닫고, 통합하는 자,
즉 완성에 이른 깨달은 자를 말한다.
이것은 불교가 말한,
태여날 필요가 없는 자,
또는 태여났다 하여도 사람의 성性에 고통받지 않고 자아를 초월한 존재(보살)를 나타낸것이다.

그리고 2500년전, 석가는 도법를 전파할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
<사람은 살아가기에 고통을 받는다>라고 인간성을 고정시켰다.
그것은 그가 사는 시대가 특정된 왕에게 지배당하는 민중에게는 희망이 없는 혼돈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태여나는것이 잘못된거다>라고, 삶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대였다.

소승불교는 현세가 고해이기에, 조금이라도 공덕을 쌓아 내생에 좋은 삶을 살기를 바라게 되었다.
그리고 대승불교는, 고해에서 벗어나 극락정토에 가기 위하여, 구원의 덕택을 얻으려는 길로 바뀌여 버렸다.
원래, 자아를 초월하는 탐구의 길이, 고통으로부터 해방받고 싶어하는 념원을 이루는 길로 변모하여,
그 결과 사람들은 업장이 더욱더 쌓아가게 되었다.

중국의 천반도(天盘图)이 알려준것은, 지구에 종교관을 가져온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전의 일이다.
역사의 긴 흐름으로 볼때, 이것은 그렇게 먼 옛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3000년을 경과하여, 천반도가 보여주는것은,
종교의 시대의 종말과,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다.
이 새로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산다는것에 소원을 이루거나, 구원을 바라는것이 아닌,
자신이 자신을 정확하게 깨달음으로 하여,
자아에 휘둘리지않고,
구원받을 필요가 없는 높은 의식을 가진 존재(보살)이 되는 것이다.

이리하면 지금부터의 시대는,
종교의 시대가 가르쳐준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의 성에 휘둘리어 살수밖에 없다> 는 소극적인 감정에서의 해방이 아닌,
자아를 이해하고, 자아에 휘둘리지 않도록 통제하고,
그 개성을 유효하게 이용하여
높은 의식하에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한 삶을 살것을 요구하고 있다.

3000년의 종교의 시대를 경과하여,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를 사는 인간성으로 되었을때,
성은 <신성하다>의 성과 통하게 된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서로가 성교하는 성을 통하여,
모든 생명의 시작은 성이기에, 우주의 근원의 작용과 통하게 된다.
이런 비밀스러운 구조가 지금 명확해지고,
이것은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종교의 시대에서는 석가모니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말하였으나,
지금은 새로운 다음 단계의 깨달음이 인류를 맞이하고 있다.

인간은 한명한명이 개성적인 인간성이란 성을 가지고 있다.
석가모니 시대는, 태어나면 고난의 연속이기에,
세상을 알수록 사는것은 괴롭다고 말한다.

하기에 <자,빨리 죽자>는 발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고해의 원인을 소멸하지 않고 죽게 되면,
그것이 원인이 되어 다시 태어나 고해를 살게된다.

때문에 <삶을 음미하고 태여나는 일을 없도록 합시다.> 라는 길을 가르쳐 주었다.
이것이 지난 시대에 맞는 도리라면,
지금의 시대는 지금에 맞는 도리를 찾는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시대에서 우리는 바보스러운 인간들의 최고치를 보았다.
전쟁으로 보여주는 물리적 지옥의 세계도 보았고,
사람의 마음이 만든 어둠에 세계도 봐았다.

최근 주목되는 화제가 있다.
일본에서 개최된 G7정상회의가 끝난뒤,
오바마 대통령은 처음으로 70년전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히로시마를 방문하였다.
오바마대통령은 취임 후, 핵 페기를 주장하여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하지만 자국의 핵에 조차도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하였고,
세계 핵 긴장의 파워 발란스에 의하여, 조선의 핵개발의 진보를 유발하였다.
이런 것들을 가리기 위하여 히로시마를 방문한것으로도 보인다.
이러한 일들을 포함하여,
인류의 마음의 어둠음은 최대치에 도달하였고,
세계의 리더나, 성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현대사회가 도달한 모순의 근원이라이라는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표면적인 보여주기 위한 평화를 부르짓는게 아니라,
현 상황을,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는 전화점으로 삶고,
물질세계의 추구를 정신세계의 탐구로 변화시키는것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석가모니 시대에는 <사람으로 태여나면, 고해를 살아서 힘드니 태여나지 말라>는 것이
깨달야하는 목적의 출발점이였다.
하지만 이런 고해에 있으면서도,
인구는 줄어든것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이 증가하였다.
사람들은 고해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뿐더러,
욕망의 감정에 빠지여,
오히려 고통의 종자를 인생에 뿌렸다.
그 결과 세상은 혼란의 극에 도달한것이 현 상황이다.

본래, 이런 변변치 않은 인간은,
지상천국을 추구하는 목적으로 볼때 불필요한 존재이기에 도태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하늘의 뜻에 따라 산다면,
삶에 의하여 자신을 닦아,
진짜 필요로하는 영혼들이 지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세계로 되어간다.

지상을 산다는것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새로운 시대에,
영적인 성장의 손득으로 자신을 고차원으로 이끌고,
자신이 납득하고 긍지를 가질수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고 하늘과 함께 ‘나라’를 만들어
지상을 풍요롭게, 모두가 기뻐하는 세상을 펼쳐야 한다.
자신의 소망이 하늘의 뜻과 같을때, 이것이 새 시대의 보살의 모습이다.

종교 시대의 초기는,
개인이 오직 개인만의 깨달음을 추구하여 부처가 되는 시대였다.
뛰여난 성인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의 시대는 <모는 중생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 석가의 말씀에 있는 것처럼,
개개인의 하늘의 뜻을 깨닫고,
모든 사람이 부처라는 자각을 가지고 사는 시대이다.

2016.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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